회상

한 회사의 개발자로서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던 2022년의 어느 날이었다. 개발하고 말다 안 풀리는 문제에 봉착한 뇌를 환기한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둘러보던 나는 외국에서 출시한 어느 서비스에 대한 리뷰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과 대화가 가능했으며, 간단한 작문을 할 줄 알 뿐 아니라, 어떤 목적을 수행하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작성할 수도 있었다. 나는 넋이 나가서 2시간가량을 허우적거리다가, 마치 신기한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되어 주변 개발자들에게 그 서비스를 소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세상을 놀라게 할 어마어마한 게 나온 것 같다고.
기대와는 달리 주변의 반응은 다소 시큰둥했다. 이것도 할 수 있나요? 저것도 할 수 있나요? 하던 관심은 금방 시들해졌고, 이것도 안되네 저것도 안되네. 별 거 아니네 하고는 각자 등을 돌려 다시 일을 하러 가기에 바빴다. 한창 바쁜 시기에 일은 안하고 어디 외국의 이상한 서비스를 가지고 와서는 세상이 당장이라도 바뀌리란 듯 떠들어대는 나는 또 유난한 별종이 되어 있었다.
2025년 오늘, 그것은 이제 세상을 놀라게 하지 않는다. 그저 당연한 것을 묵묵히 이어나가는 듯한 느낌을 풍긴다. 만 3년이 되지 않은 시간동안에 그것은 이미 세상을 여러 번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제 대중에게는 더 이상 생소한 이름이 아니게 되었다.
그 서비스의 이름은 다름아닌 ChatGPT였다.
마주한 인공지능

ChatGPT의 출현과 함께 대규모 언어모델(LLM)에 대한 관심은 우주를 향하는 로켓처럼 치솟았다. 그칠 줄 모르는 관심이 어마어마한 투자의 연속을 일으켰고, 그렇게 인공지능 시대는 다소 뜬금없이 시작되었다.
인공지능이 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인공지능은 실효성의 검증이라는 시험대를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었다. 인공지능이 뛰어남이 입증된 분야는 이미 하나가 있었다. 전 세계가 지켜본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통해서 바둑이라는 유구한 역사의 놀이는 인공지능에게 정복당했다. 하지만 바둑이라는 분야의 함락은 대중에게 큰 영향을 주지는 못 했다. 바둑을 둘 줄 아는 사람보다 둘 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으며, 바둑 하나 패배했다 한들, 먹고사는 게 힘들어질 걱정은 없었기 때문이다.(바둑을 업으로 삼는 분들은 예외겠지만)
LLM 기반의 ChatGPT는 바둑과는 비교도 안될 다양한 분야의 시험대에 올랐다. 작문, 예술, 수학, 철학, 정치, 경제, 기술 등 갖가지 전문 분야의 종사자들이 ChatGPT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것이 과연 쓸만한가를 평가했고 그건 지금도 여전히 매일같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때 뉴스 기사에서는 종종 "... 하지만 아직" 이라는 말이 자주 쓰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말꼬리는 자취를 감추었다.
흔히들 인공지능이 특정 직업군의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실효성에 의문 부호를 던지고 있다. 그것은 그저 '그럴 듯하게 보이는 쓸모없는 것'을 만들 뿐이며, 본인의 자리를 대체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쓸모없다고 덮어놓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마치 0과 1로 구분하는 것처럼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라, 마치 물통에 떨어진 물감 한방울이 퍼져나가듯, 모호한 경계에서 자신의 실효성을 입증해 나아가고 있다.
인공지능은 시험대를 이미 넘어섰다.

어느 순간부터, 은행이나 통신사와 같은 대형 서비스 고객센터에 건 전화는 사람이 재깍재깍 받지 않게 되었다. 요즘의 고객 상담 업무는 기성세대의 주류 시대처럼,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통해 이루어지는 단순한 형태가 아니라, 인공지능을 통한 체계적인 파이프라인을 갖춘 형태로 변했다. 이제 고객센터로 들어오는 문의 사항들을 최전선에서 맞이하는 것은 모두 인공지능이다. 비록 인공지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 사항들이 많기에, 결국에는 응대 직원에게 닿게 되고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은 불편함과 지루함을 느끼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소비자 입장에서도 그리 아쉬울 게 없는 사항이다. 인공지능을 통해 해소되는 단순한 문제들에는 인력을 투입하지 않아도 될뿐더러, 확률적으로 일어나는 감정 노동으로부터 응대 직원들에게 어느 정도의 해방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을 통해 전처리된 고객응대업무들은 그것을 처리할 수 있는 보다 전문적인 응대 직원에게 연결시키는 등 더 나은 고객 지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포석을 까는 데에 이바지할 수도 있다. 기업은 효율을 챙겨서 좋고, 고객은 문제 해결의 과정에 일률화되니 오히려 확실한 서비스를 제공받게 된다.
이런 직접적인 일자리의 측면을 넘어, 우리네 일상의 삶과 엮여있는 다양한 분야에서의 활약은 또 어떠한가. 전세계인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유튜브 영상과 같은 많은 창작물들은 때로는 적게 때로는 대부분의 비중이 인공지능을 통해 만들어진다. 영화나 드라마 중간의 짧은 장면 속 소품이나 인물을 넘어 장면 그 자체까지도 만들어내고 있으며,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그림들은 다양한 콘텐츠에 활용되어 널리 퍼지고 있다. 이 정도의 영역까지 넘어왔다면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
인공지능은 시험대를 이미 넘어섰다.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은 시대

인공지능이 인간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사실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에게도, 인공지능에게도 그렇게 만들 생각은 없다. 중요한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가 소비해 내는 많은 가치들, 인간만이 만들어냈어야 했던 것들을 인공지능이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치라는 것은 다각도에서 부여되는 것이지만, 그 중에서 가장 고결한 것들 중 하나로 평가받던 것은 바로 노력이었다. 사람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인 무언가는, 그것이 미적으로 뛰어난 게 아니라 형이상학적일지언정 나름의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 역사동안 당연한 진리였다.
그러나 우리는 노력이라는 가치와 그것으로 이루어진 과정은 사실 반드시 결과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공을 아무리 많이 들여 만든 도자기라 할 지라도 마지막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깨진 그릇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반대로 별 뜻 없이 대충대충 만들어낸 글귀가 세상을 관통하는 명언이 되기도 한다.
인공지능은 바로 이러한 영역, 즉 노력한 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영역들에서 우리 삶의 이모저모를 바꿔나가고 있다. 한국인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대기업에 입사지원을 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일들이 그렇다. 남들보다 20시간 이상을 투자한다고 해서 더 뛰어난 자기소개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차라리 남들보다 20시간을 아껴서 이력서에 적을 무언가 혹은 면접에서 활용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 주요할 것이다. 애초에 내가 써 내려가는 나의 일대기와 인공지능이 써 내려가는 나의 일대기가 본질적으로 같을 것이고, 오래오래 공들여 썼다고 좋은 평가를 내려주지도 않을 자기소개서에 누가 그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겠는가. 인공지능이 작성한 자소서인 지 손으로 쓴 자소서인 지를 구별해 내는 것도 결국은 인공지능일 텐데 말이다. 자기소개서라는 문서의 제공 목적은 나라는 사람을 알리기 위함이고 그러한 문서의 평가 목적은 이력서로는 알 수 없는 작성자에 대한 정보일 텐데, 써준 사람이 누구인 지(혹은 무엇인 지)를 가려내는 행위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일까.
효용 분별의 시대

소비의 위축과 디지털 자산의 강세 탓인 지, 이 시대는 대(大)미디어 시대라 할 수 있다. 한 때는 전문적인 방송인들과 매체들을 통해서만 생산되던 많은 콘텐츠들은 이제 일반인의 범주로 내려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본인의 채널을 게시하고 콘텐츠를 게시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한 시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결과 지향적인 풍토의 탓도 있는 것 같다. 필승공식은 아니었지만, 과거 많은 컨텐츠들은 더 많은 자본과 노력을 들여야만 보기 좋고 재미있는 콘텐츠로 이어진다는 사고방식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가장 큰 홍보 효과를 가진 수단 중 하나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어필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제작비(=노력)의 규모에 따라 콘텐츠에 대한 인내심을 함양했고, 끝내 재미없을지언정 엉덩이를 붙이게 만드는 힘이 거기에는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순간부터 그러한 노력보다는 재미있는가, 즉 과정보다 결과에 집중하게 되었다. 어느 이름 모를 학교의 중학생이 찍어 올린, 화질도 구린 짧은 영상 하나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나아가 뉴스에도 소개된다.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재미있느냐라는 콘텐츠의 본질만이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풍토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게 바로 유튜브이다. 유튜브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영상들은 들어간 노력이 제각각이다. 한땀 한 땀 프레임 단위의 정성을 들여 게시한 영상이 있는가 하면, 인공지능으로 뭉텅뭉텅 만들어낸 작은 콘텐츠들을 짜깁기하여 게시한 영상도 있다.(물론 이것조차 꽤 많은 노력을 수반하지만) 개중에 상위에 랭크되는 영상은 무엇인 지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인공지능으로 만들었는 지를 알고 몰라서가 아니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 있어 구별해야 할 문제는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 효용(재미)이 있느냐 없느냐이기 때문이다. 유튜브뿐이 아니라, 이 시대에 만들어지는 수많은 콘텐츠(글, 그림, 영상 등)들에게는 이제 이러한 잣대만이 남을 것이다.
진위 분별의 시대가 아니라 바야흐로 효용 분별의 시대인 것이다.
노력의 몰락

인공지능 시대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 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다만 중요한 하나의 가치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것만 같다. 삐뚤빼뚤하게나마 열심히 미술 방학 숙제를 그려나가던 모습, 수능 시험장에서 수험생들이 계산기 하나 없이 100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에 미적분 문제를 풀어나가던 모습, 어렵기만 한 알고리즘 문제의 답을 이해하기 위해 밤을 새 가며 공부하던 모습들은, 그 모습 자체만으로도 빛났으며 후일에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그러한 가치가 있었다. 비록 그림의 모습이 삐뚤어도, 시험 결과가 좋지 않아도, 거기에 들인 노력은 우리에게 효용 가치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안겨주곤 하였다. 하지만 지금, 노력의 가치에는 엄격한 잣대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인공지능이 가져오고 있는 가져오고 있는 노력의 몰락은 인간의 유구한 역사에 있어 가장 큰 변곡점이 될 것이다. 그것이 그려내는 효용의 시대에는 또 어떤 많은 것들을 경험해볼 수 있을까 기대가 되면서도, 노력의 끝에서 얻게 되는 달콤한 경험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는 생각은 꽤 많이 씁쓸 하만 하다.
'🌍 세상 정보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관세전쟁의 포화 속, 그림자가 드리운 시장 속에 빛나는 금 (2) | 2025.02.26 |
|---|---|
| 무차별 트럼프 관세 이은 미국 우선주의가 만들어내는 시대의 변화 (0) | 2025.02.23 |
| 트럼프 관세 정책의 시작, 원자재 파동 (1) | 2025.02.11 |
| 끝나지 않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을 위한 트럼프의 한걸음 (2) | 2025.02.10 |
| 인공지능 전쟁의 식량을 공급하기 위한, 인공태양 핵융합 기술 (0) | 2025.02.05 |